[특집] 합법적 주말 음주 위해 시작한 이세영 기자의 도시농부 도전기… 먹고 마시기 위한 농사라도 안전 먹거리와 자녀교육은 덤이라네 | ||||||||||||||||||||||||||||||||||||||||||
‘투더더덩. 투덩. 투더더더덩.’ 베란다 쇠난간에 빗방울 부딪는 소리가 요란했다. 몇 시나 됐을까.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 액정을 확인했다. 새벽 5시15분. 출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불현듯 이틀 전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 모종이 생각났다. 지난해 여름 화분에 키우던 상추 모종을 장맛비에 내놨다가 모조리 망쳐버린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얕게 심은 부추씨, 쑥갓씨는 이 굵은 빗줄기에 무사하실까. 날이 밝는 대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텃밭에 나가보기로 했다. 주말 농사 3주 만에 농사꾼이 다 됐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 틀림없는 진리다.
장광설을 펴진 않겠다. 고백하건대, 시작은 꼼수였다. 지난해 봄, 예기치 못한 주간 부서 발령으로 기자 생활 9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한 주 5일 근무환경이 주어졌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집안 청소도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트 마당에서 자전거도 탔다. 가까운 경기도 파주의 사설 동물원도 찾았다. 하지만 매주 이벤트를 마련해 가족 나들이를 갈 순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건 더 좀이 쑤셨다. 7살 딸아이를 초콜릿과 삼각김밥으로 꾀어 북한산을 타기 시작했다. 아내로부터 즉각 태클이 들어왔다. “애를 산악인 만들 거야?” 그즈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박종찬 기자가 접근해왔다. 주말농장을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그는 외모부터 완벽한 농사꾼이었다. 고교 시절까지 집안 농사일을 도운 연유로 야전 경험도 풍부했다. “해보면 재밌어. 수시로 푸성귀 갖다 바치니 집사람도 좋아하고, 가끔 친구들 불러다 고기도 굽고 이거(술)도 할 수 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주말에 합법적으로 음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 순간 난 한 마리 파블로프의 개였다. 그래, 해보자. 대학 시절 농활 가면 하루 8시간 밭일은 기본이었는데.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손바닥만 한 밭뙈기 경작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무엇보다 아내의 타박을 피해 합법적인 외출과 음주가 가능하다지 않은가. 박 기자가 준 상추와 쑥갓, 깻잎 봉지를 아내에게 상납한 뒤 조심스레 주말농장 얘기를 꺼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 있으면 해봐. 쓸데없이 산에 쏘다니는 것보단 낫네.” 투박한 외모와 달리 박 기자는 집요하고 치밀했다. 아내에게 가져다주라며 손수 다듬고 물에 데쳐 냉동실에 보관해온 무시래기까지 건넸다. 아내는 “오랜만에 좋은 친구를 사귀었다”며 치사하더니 “잘 쫓아다니며 박 기자 하는 것 열심히 보고 배우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2월의 어느 밤, 안주인들 눈을 피해 동네 치킨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두 사람은 봄이 오면 북한산성 입구의 주말농장에서 본격적인 ‘도시농업’을 시작하기로 결의를 다졌다. 알코올 기운 때문이었을까. 박 기자는 자기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앞으로 푸성귀 조달은 걱정 말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 말은 잘 발달한 박 기자의 장딴지 근육만큼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자기 먹거리 자기가 짓는 게 자립” 3월 초 나란히 붙어 있는 5평짜리 밭 두 이랑을 각각 10만원씩 주고 계약했다. 한여름 볕을 피할 농막과 고기를 구워먹을 평상이 가까운 게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농장 주인 모순복(53)씨는 “사장님들, 밭 보실 줄 안다”며 우리(정확히는 박 기자)의 눈썰미를 칭찬했다. 덩달아 우쭐해졌다. 농장에는 5평짜리 밭이 우리 것 말고도 400이랑 정도 더 있었다. 논이었다가 오랫동안 휴경지로 방치돼 있던 것을 동네 토박이인 모씨와 조카가 임대해 지난해부터 주말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기왕 시작한 김에 도시농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문해보기로 했다. 서점에 가 전국귀농운동본부가 펴낸 <도시농업>이란 책을 샀다.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다룬 총론부터 국내외 지역 사례, 발코니·옥상텃밭 조성법과 음식물찌꺼기로 퇴비 만드는 법까지 짜임새 있게 엮어놓았지만, ‘도시 농사꾼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목에 값할 만큼 초짜 농부에게 필요한 실무 정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농사 기술과 관련해선 지난 3월 창간한 <계간 도시농업>(도시농업포럼)에 더 정보가 많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서울에 도시농부학교란 곳이 운영 중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햇수로 벌써 3년째였다. 서울도시농업네트워크(cafe.daum.net/cityagric)라는 단체가 관악·영등포·강동·용산구에서 처음 시작해 금천·광진·양천·서대문·송파·동작구까지 확산된 터였다. 동작 도시농부학교를 운영 중인 지역 시민단체 ‘풀씨모임’에 전화를 했다. 마침 강의가 있는 날이니 저녁때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로 찾아오라고 했다. 7시. 강의실엔 20명이 조금 안 되는 수강생이 강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10명 정도가 50대 이상, 나머지는 30~40대로 보였다. 쉬는 시간,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여성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서울 충무로의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1년차 직장인 이지현(26)씨였다. 10년쯤 뒤 경기도 양평이나 제주도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게 꿈이라고 했다. 요즘은 지자체(경기도 광명시)에서 분양받은 텃밭이 개장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앞날이 창창한데 무슨 귀농이냐 했더니 “자기 먹거리를 자기 손으로 짓는 게 자립의 기본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고학력 중산층 중심으로 관심 번져 안정준(34)씨는 동작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였다. 지역의 저소득층 가정이나 홀몸 노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복지 프로그램으로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텃밭 농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가 생소한 그는 2주 전 농부학교에서 지렁이와 분변토를 분양받았고, 지난주 스티로폼 박스에 산흙과 분변토를 채운 뒤 상추씨를 뿌렸다고 했다. 하루하루 싹이 자라는 모습에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이씨나 안씨처럼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는 최근 3~4년 새 빠르게 늘고 있었다. 2010년 겨울에 발표된 ‘도시농업 활동 유형화 연구’(황정임·최윤지 외)라는 논문을 보면, 전국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20살 이상 성인 가운데 본인이나 배우자, 세대주가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는 19.1%에 이른다.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이들 가운데 3.4%가 20대, 20.2%가 30대다.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와 60대 이상으로 각각 26.8%였고, 다음이 50대로 22.8%였다. 도시농업이 농촌 출신 은퇴 직장인의 소일거리라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조사 결과다. 소득수준은 연 3천만~5천만원이 36.8%, 5천만~1억원이 23.2%였고, 학력은 대졸 이상이 47.7%로 고학력 중산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농사 목적은 ‘취미나 여가선용’(33.7%)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안전 먹거리 확보’(17.0%), ‘자급자족용’(16.7%), ‘농촌 향수’(7.7%), ‘자녀 교육’(6.6%) 순이었다. ‘합법적인 주말 음주 기회 확보’가 최대 관심사였던 우리는 어느 범주에 속할까. 농심(農心)이 이렇듯 불순해도 되는 것일까. 번민하는 가운데 첫 작업일을 맞았다. 3월 셋쨋주 토요일, 날씨가 끄물끄물했지만 개시일을 늦출 순 없었다. 우리의 농사가 ‘가족을 위한 봉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시큰둥한 아이들을 농장으로 몰고 갔다. 각각 팻말에 아이들 이름을 적어 밭머리에 꽂고, 닭똥 거름 한 포대와 퇴비 두 포대를 구입해 밑거름을 주기로 했다. 박 기자가 삽날을 이용해 능숙하게 비닐포대를 잘라낸 뒤 내용물을 밭에 붓고는 고르게 바닥에 뿌렸다. 박 기자가 하는 걸 유심히 살핀 뒤 그대로 따라하면 됐다. 일은 15분 만에 끝났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1년 농사를 개시한 기념으로 준비해온 막걸리를 땄다. 일하러 온 다른 회원들은 ‘첫날부터 술판이니, 1년 농사 안 봐도 뻔하다’는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릴 쳐다봤다. 개의치 않았다. 밭일 뒤 먹는 막걸리는 20년 전 농활 때의 그 맛이었다. 그사이 주인집 똥개들과 친해진 아이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개들과 더불어 싸돌아다니며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었다.
“멧돼지 때문에 고구마는 안 돼”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두 번째 밭일을 나갔다. 농장주는 일단 밭부터 깊게 갈아야 한다며 삽을 한 자루씩 내줬다. 박 기자가 능숙한 자세로 삽질을 시작했다. 곁눈질을 해가며 열심히 따라했다. 5분쯤 지나자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박 기자가 허리를 펴더니 “장난 아닌데”를 연발했다. 농사꾼 외모 덕에 군에 있을 때 소총보다 삽자루 쥔 횟수가 많았다는 박 기자도 삽질은 17년 전 군 제대 뒤 처음이라 했다. 10분이 지나자 온몸이 땀에 젖고 목과 허리, 어깻죽지가 뻐근해왔다. 5천원을 내면 경운기로 밭을 갈아준다는 농장 주인의 제안을 거절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밭갈이를 마친 뒤 농장에서 파는 모종을 샀다. 한 집에 상추 30포기였다. 겨자채와 치커리 모종도 있었지만, 다 사려니 가격이 만만찮다. 상추를 제외한 나머지 작물은 씨앗을 뿌리기로 했다. 열무·겨자채·쑥갓·부추 씨앗과 함께 씨감자도 한 자루씩 구입했다. 고구마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농장주가 큰일이라도 날듯 손사래를 친다. “안 돼. 냄새 때문에 멧돼지가 내려와 쑥대밭 만들어버려.” 그는 농장이 멧돼지 천국, 북한산 자락이란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모종삽으로 구멍을 파고 20cm 간격으로 상추를 심었다. 대충 눈짐작이었다. 씨앗은 작대기로 골을 파서 한 줄로 뿌린 뒤 살짝 흙을 덮었다. 순이 난 씨감자를 삽으로 토막내 미리 만든 구멍에 하나하나 심고 나니 일이 끝났다. 날은 저물고, 우리는 밀레의 <만종>에서처럼 석양을 등진 채 경건한 마음으로 땅을 향해 고개 숙였다. 그리고 이날까지 투입된 비용을 셈해봤다. 밭 임대료 10만원, 밑거름값 1만7500원, 모종과 종잣값 1만5천원. 도합 13만2500원. 어림잡아 가족이 1년 먹을 채솟값을 훌쩍 넘겼다. 실속 없는 사내들 인생살이가 대저 이와 같다. 굳건한 사내들의 결심이 시간의 속절없는 침식에 무너지는 상황을 피하려고 회사 동료들에게 텃밭농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기로 했다. 얼마 전 베란다 텃밭에 도전할 요량으로 스티로폼 상자 2개를 구해놓았다는 이제훈 편집장은 “잘해보라”며 회사 선배 정남구 기자가 쓴 <다섯 평의 기적>이란 주말농사 도전기를 건넸다. 김남일 기자는 “나도 생명을 가꿔보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우더니, ‘팔랑귀’라는 신윤동욱 기자의 비웃음을 얇은 귓전으로 흘려보내고는 곧장 서울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상자텃밭 분양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고기 먹는 날 꼭 한 번 불러달라”며 은밀한 청탁을 들이미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많은 이정훈 기자도 있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 혹, 마음이 동하는 독자가 있다면 늦지 않았다. 지금이 적기다. 농심이 그저 순수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먹고 마시기 위한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하더라도, 성찰과 회심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게 농사의 치유력이다. 주말농장이 부담스럽다면 집 안에 작은 텃밭 상자를 들여놓고 시작해도 좋다. 기초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벌이는 상자텃밭 보급사업도 적극 활용할 만하다. “5년 내 서울을 도시농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계획도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전임 오세훈 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던 한강 노들섬에 도시농업공원이 조성돼 5월에 개장한다. 상반기 안에 도시농업지원조례가 만들어지고, 서울시가 운영·지원하는 도시농업 농지(시설) 면적도 지난해 28만7936㎡에서 올해 62만1472㎡로 크게 늘어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 흐름에 올라타시라. 신천지가 열리리라.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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