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공동체

주민이 주도한 마을의 변화! 그 안에 미래가 보인다

옥상사랑 2014. 6. 26. 09:27

 주민이 주도한 마을의 변화! 그 안에 미래가 보인다



밤낮없이 중앙에 나가 일하다 돌아온 마을은 예전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갔다 밤늦게 돌아오는 일을 4년간 하면서 이웃을 만날 틈조차 만들기 어려운 생활을 하다 보니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어색해 예전 같지 않은 거다.

 

지역에서 활동할 때에는 아는 사람 만나 잠깐씩 안부 묻다가 몇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것이 예삿일이었고, 함께 가던 일행이 있으면 내 손을 잡아끌어야 이야기가 멈추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내 활동시간의 반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나갔다가도 급한 일이 생기면 마을 곳곳에 있는 마음 닿는 집에 들어가 전화나 팩스, 심지어 소소한 돈까지도 빌려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편한 곳이 마을이었다. 이런 마을살이가 그저 만들어진 것일까?

 

내가 마을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시점은 지역의 주민들과 마을에서 일어난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나도 주민 중 한 사람이 되었을 때였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활동하면서 그들과 함께 가슴도 넓어지고 생각도 커졌다. 주민들과 오랫동안 함께 호흡하면서 일군 마을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시작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읍,면,동을 중심으로 지역자치를 해보겠다고 도입된 제도가 ‘주민자치위원회’였다. 주민 입장에서 생각해도 ‘커뮤니티센터’로서의 기능을 할 것이라는 주민자치센터와 그 운영을 위해 최고의 심의기구로서 주민자치위원회는 관심이 가는 제도였다. 그 시절은 직능단체 중심으로 거의 모든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던 터라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우리 몇 사람이 위원회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도를 처음 도입해 구체적 모델이 없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구성된 주민자치위원회는 회의 때마다 마찰이 있었다.



주민들의 의견으로 마을공원이 만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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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문근린공원이 조성되기 전(좌)과 후(우)의 모습. 녹음이 우거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1년 넘게 그런 관계로 지내던 중, 우리 지역의 쌍문근린공원 안에 있는 나대지에 ‘갤러리 건립’을 하겠다는 구청의 발표는 주민들 간의 첨예한 대립을 예고하는 이슈였다. 이 일에 주민자치위원 세 명이 포함된 주민대책위가 꾸려졌고 구청과의 지난한 협의 끝에 우리의 의사가 반영된 ‘수목원형 생태공원’의 형태로 공원이 조성되었다. 구청의 건물조성 계획이 백지화된 것이다. 주민대책위가 주민설명회를 여러 번 열었고 새로운 설계안을 승인받았다. 선거를 통해 바뀐 구청장에게도 설계안을 승인받는 절차를 밟았다.

 

공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행정에서도 그동안의 잘못된 절차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서인지 명예감독관으로 선정된 두 명의 주민대표와 소통하면서 협력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숲 운동을 하는 중앙단체의 전문가 그룹이 조사 작업을 비롯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것이 결정적으로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 경험을 통해 주민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중앙단체와 전문가 그룹의 역할, 민관 거버넌스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된 건 이후 지역 활동을 해나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어렵사리 탄생된 쌍문근린공원은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공원조성 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공원에서 해제한 후 체육관을 짓겠다는 구청의 설명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주민들의 모임인 체육동호회의 제안을 구청이 승인하는 형태였다.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주변 아파트의 부녀회와 동대표회장을 포함하여 대책위를 꾸렸다. 공원 조성 때와 마찬가지로 대책위원회 구성, 구청 관계자 간담회, 구의회 방청, 주민서명, 결의문, 주민설명회 등의 끊임없는 활동으로 건물 설립은 무산되었고 숲으로 보존한 상태에서 시설정비만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이 활동도 진행될 시기에는 오랫동안 힘겨웠지만 지내고 보니 주민대표들이 대책위를 꾸린 것이어서 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은 좀 쉽게 이루어졌고, 공원조성의 경험이 있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도 했다.

 

녹지를 지켜내려는 활동은 곳곳에서 보이지만, 결국 경제논리 때문에 주민들이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위의 두 사례는 주민들이 숲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강했고 또 주민대책위가 모든 진행상황을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한 결과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주민이 기획하는 음악회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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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관 건립 반대를 알리는 과정에서 시작된 음악회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지역행사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주민들은 생활의 현장에서 늘 마주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서로 대립적 상황을 만드는 것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체육관건립 반대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설명회를 두 차례의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한 것이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에도 주민대표들이 참여하면서 음악회를 열고, 소식지를 만드는 일 등을 하는 데 무엇보다 주민대표들의 노력이 컸다. 그들은 모금도 주도적으로 나서 주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음악회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다. 지역주민들의 재능기부가 중심이고 외부의 그룹들도 거의 실비에 가까운 비용으로 참여해 주기 때문이다. 훌륭한 공연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마을에서 경험하자는 의미가 컸다.

 

참여했던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주민의 힘으로 음악회를 개최하자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네 차례쯤 그렇게 주민대표와 부녀회 주관으로 음악회를 개최하다가 2007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주민자치위원과 직능단체에서 음악회를 여는데 필요한 역할을 분담하여 현재까지 매년 진행되고 있다.

 

숲살림 활동이 싹트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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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생태 소모임 숲살림은 꽃 심기와 나무심기(위) 활동과 

생태 체험학습과 산책로 정비(아래) 등 적극적으로 공원 운영에도 참여했다.

 



 

쌍문근린공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주민참여형 공원’이라는 점에서 이후의 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다. 공원의 형태를 논의할 때부터 전문가 그룹의 도움으로 생태교육을 진행하여 숲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 교육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생태소모임 형태로 모임을 지속하면서, 이후 이 공원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렇게 ‘숲살림’이라는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공원의 빈 공간에 꽃이나 나무를 심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으로 사람들이 다니면서 망가뜨린 곳을 몇 해에 걸친 식재작업을 통해 숲으로 복원하는 활동도 했다. 숲이 조성되어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는 주민자치위원회 프로그램으로 전환하여 ‘어린이를 위한 사계절 생태놀이’를 진행하면서 도봉구의 아이와 어른들이 찾아와서 쉬었다 가는 곳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숲살림 활동은 5년 정도를 열심히 활동하다가 해산되었다. 가꾸는 데 드는 비용조차 지원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평범한 주부들이 숲살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찾아 키워나가고 지역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통해 자부심을 얻어 왔는데 해산하게 되어 안타깝기만 했다. 마을활동의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더욱 아쉽기 짝이 없다.

   

주민들이 지역의 일을 결정하고 소통한다!

 

공원 만들기의 두 건은 주민자치위원의 결속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고, 이후의 위원회 운영과 결정의 수순은 그 이전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일에 참여한 주민자치위원들이 주민들과 함께 일을 이뤄가는 과정에 대해 나머지 주민자치위원들의 신뢰가 싹튼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 위원들이 만드는 동 소식지

또 한 가지 변화가 생긴 것이 있다면 동 소식지의 변화다. 주민들로 구성된 편집회의에서 내용을 구상하고 취재하여 만드는 소식지로 생생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예산의 부족으로 계간으로 발행한 것이 아쉽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소식지라 자부심이 있다.

 

∘ 주민센터 프로그램 운영

이 외에도 교양강좌 및 동호회 성격의 프로그램 운영, 도봉구에서 처음으로 주민자치위원의 책임 하에 야간 프로그램 진행, 지역단체에게 센터 공간 빌려주기, 위원회 주관 현장학습 등을 통해 주민들이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위원회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함께 진행해 가는 모습을 통해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주민자치위원회의 변화는 건강한 지역을 만드는 시작이라는 것을 놓쳐선 안 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그 외 내 주변의 마을살이 모습들

-아이들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만들려는 동대표 회의의 횡포에 맞서 놀이터를 지켜낸 주민들.

-온갖 사업을 시작해 리베이트를 챙기는 동대표 회장을 물러나게 한 주민들.

-아파트의 유휴공간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자원활동으로 꾸려가는 주민들.

-아파트 화단을 정원처럼 멋지게 가꾸어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그곳에서 커뮤 니티를 주도해가는 주민들.

 

주민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으로부터 마을만들기를 시작해 보자!

 

내가 사는 지역의 사례에서 보듯 전국적 이슈에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는 가능하지 않지만 마을에서, 마을주민의 생활에 기반한 문제에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마을을 만드는 주체가 마을주민이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특정한 능력을 가졌거나 특정한 그룹만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노력에 대해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을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추진해가는 것도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일상화하여 협의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주민들이 주체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과정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을 ‘생활정치’라고 표현하고 싶다. 생활정치운동은 주체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정치를 대체하는 정치운동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과정이다. 생활정치운동은 정치의 주체였으나 주체임을 망각한 사람들에게 다시 그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활정치운동의 가장 큰 힘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몇몇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전에, 주민들 각자가 바람직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고 그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마을만들기는 생활정치운동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본다. 마을만들기는 결국 국가나 시장이 주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 이웃 간의 관계망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필요한 여러 조건들을 깨어난 개인들의 결합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해결해가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적용되는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마을활동은 틀에 갇히지 않아 활기가 있고 변화가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년간 중앙에 나가 일하면서 내가 속한 단체에서 마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나누고, 마을 곳곳을 걸어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마을만들기는 참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지난 4년을 보내며 절감하게 되었다. 서울의 끝자락에 있어 불편함이 많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유라면 ‘마을에 있는 나의 이웃들’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예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나처럼 마을살이의 즐거움을 느끼고 그 기운을 퍼뜨리는 한 사람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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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_곽금순(서울시마을공동체위원, 한살림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