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마을 만든 일등공신, 함지박 텃밭
60개의 함지박 화분이 가져온 아파트의 변화
[서울톡톡] 싱싱한 상추와 치커리 열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오이와 토마토 고추 등 열매채소도 풍성히 자라고 있는 이곳은 밭이 아닌 함지박이다.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 텃밭을 일구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강서구 방화동 장미아파트에서는 그 일을 해냈다. 올해 4월, 공동주택 커뮤니티 활성화 공모 사업에 선정된 방화장미아파트는 아파트 앞 빈터에 대형 함지박 화분 60개를 들여 텃밭으로 조성했다.
지난 6월 9일은 함지박 텃밭을 개장한 날이었다. 개장 한 달 전, 아파트 380여 세대 중 공개 추첨을 통해 60가족에 분양된 함지박텃밭. 주민들은 텃밭을 가꾸며 소원했던 이웃과 인사도 나누게 됐다고 전했다. 아파트 앞마당에서 상추쌈 등 푸성귀를 곁들인 점심상이 조촐히 차려졌다. 텃밭에서 수확한 부추와 깻잎으로 넉넉히 부침개도 부쳐 다른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과도 함께 했다.
벌 나비가 찾아드는 함지박 텃밭은 아이들에게는 식물의 성장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 됐다. 무당벌레를 발견한 아이들은 곤충관찰에 한창이다. 커뮤니티 공간이 따로 없었던 터에 주민들의 관심도는 높아 텃밭 분양까지 3대 1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지만 텃밭을 가꾸면서 이미 함께 나눠 먹는 정다운 이웃사촌으로 거듭났다.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난 열무와 케일 잎사귀를 주민들이 보여주었다. 장미아파트에는 EM발효기가 설치돼 있어 언제든 받아다 쓸 수가 있다. 함지박텃밭은 무농약 농사법 뿐 아니라 빗물을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경작으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아파트 지붕 둘레에 설치한 홈통을 통해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수시로 채소에 뿌려줄 수가 있다.
주민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은 함지박텃밭에 머물지 않는다.
입주자대표회장 박태봉(65)씨를 따라 들어선 경로당 서가에는 500여 권의 책이 구비돼 있었는데 모두 주민들이 기증한 책이라고 했다. 어떻게 경로당에 도서관을 꾸몄을까? 그 이유에 대해 주민들은 공간 활용과 세대 간의 융화를 꼽았다.
어르신들이 귀가한 저녁 시간대에 이곳은 주민들의 배움터가 된다. 현재 영어와 아동미술 프로그램이 매주 금요일 저녁에 진행되고 있는데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무료 운영하고 있다. 그 외 어린이 영화상영, 부모자녀교육법 강좌나 'EM효소와 제습제 만들기' 친환경 특강도 수시로 열려 경로당이 이웃 간의 돈독한 정을 확인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경로당 작은 도서관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아나바다 장터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3,40대 주부들이 주축이 돼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장터를 열자 이제는 이웃 단지에서도 찾아온다. 고연옥(48)씨는 "잘 쓰이지 않는 동전이 오가는 장터로 무료기증물품도 많이 나온다"면서 "모르고 지내던 이웃이 함지박 텃밭으로 인해 이웃사촌이 되면서 함지박만한 풍성한 나날을 선물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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