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파트` 현수막의 힘!
다큐~ 마을공동체 ‘아파트편’ ③ 상암월드컵파크7단지 아파트
[서울톡톡] 770세대 상암월드컵파크7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정문을 오고 갈 때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작년 서울시로부터 '책 읽는 아파트' 최우수 단지로 선정되면서 아파트 입구에 소박하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현수막이 하나 나붙었기 때문이다.
"좋죠. 저도 현수막에 눈이 절로 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책 많이 읽는 아파트로 선정됐다니 더 뿌듯해서 애들 데리고 매일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가거든요. 그리고 내 집 바로 아래 층에 도서관이 있다고 생각하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에요."
축하 현수막 앞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던 리포터에게 지나가던 주민이 던지는 한 마디. 친근한 눈인사가 오고갔다. 아무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현수막 하나로 '통(通)'했다.
방치되어 있던 공간의 화려한 부활
입주한지 8년째인 월드컵파크7단지 아파트는 주변의 한적한 경관과 어우러진 조용한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단지 내 유휴공간이었던 곳을 작은 도서관인 '글향기 북카페'로 만들면서부터였다. '글향기 북카페'를 처음으로 생각해 낸 것은 입주자대표회장 신종갑(42) 씨.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된 신종갑 씨는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유익한 일들을 찾게 됐고, 입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적합한 710동 1층 공간을 찾아냈다.
적지 않은 세대가 살고 있으면서도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사비를 들여 이곳에 책꽂이, 책상과 의자 등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이런 공간이 하나쯤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걸까. 공간의 모양새가 갖춰지자 주민들의 관심도 늘어났다. 북카페 이름 공모에 주민들은 45건의 의견을 내 놓았고, 여러 개의 공모작 중 '글향기 북카페'라는 예쁜 이름이 탄생됐다. 선정된 주민은 부상으로 받은 5만 원을 그대로 북카페에 도서로 기증했다. 한 입주민은 귀여운 마스코트 로고를 직접 만들어 재능기부를 했다.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책을 한보따리씩 싸가지고 북카페를 찾았다. 이렇게 모인 책이 3,500여 권이 됐다. 북카페에서 필요한 비품 기탁은 물론 입주민 스스로가 도서관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개관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자원봉사자를 자청했다. 책을 분류하고 바코드 작업을 하는 것도 주민들의 몫이었다. 현재 3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서관을 든든히 지키며 대출 업무와 관리를 맡고 있다. 일일 방문객이 3~40명에 이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방학 중엔 약 2배 가량 이용자들도 는다. 도서 회원으로 등록한 입주민은 440명 정도 되며, 주민들은 한 사람당 2권씩 일주일 동안 책을 빌릴 수 있어, 4인 가족인 경우 한꺼번에 8권의 책을 빌려 볼 수 있다.
아파트공동체 변화의 허브가 되다
'글향기 북카페'는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찾아와 책을 읽고 빌려가는 공간일 뿐 아니라 주부 동아리 활동 장소가 됐고, 육아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나누는 사랑방이 됐으며, 방과 후 어린이 돌봄 서비스까지 담당하고 있다. 독서에 관심 있는 주부들이 모여 독서 토론도 하고 서평을 쓰는 주부 독서 동아리도 생겨났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소모임을 꾸렸던 엄마들이 모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 '글향기 북카페'는 이들에게 모임 장소를 제공하며 소중한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또한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인 북카페는 동네 도서관의 역할을 넘어서 방과 후 부모들의 귀가 시간까지 약 3시간 정도, 단지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줌으로써 아이돌봄 서비스까지 해 내고 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글향기 북카페'는 마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축이 된 북카페 운영진은 마포구를 비롯하여 서울시 6개의 작은 도서관을 탐방하며 운영 노하우를 배웠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주로 눕거나 엎드려서 책을 보는 점, 학부모들도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는 점들 때문에 바닥 난방이 시급함을 알게 됐다. 서울시의 아파트공동체 활성화 공모 사업에 선정돼, 받게 된 지원금으로 숙원인 난방바닥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에서 입주민들은 외부강사를 초빙해 아파트 커뮤니티 활성화 강의와 도서관 활용 방안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강좌, 부모와 함께 하는 자녀교육 교실, 멘토 만들기 체험 수업 등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만한 커뮤니티 활동들이 진행됐다.
"이곳을 고향으로 만들자"
'글향기 북카페'가 있는 709동과 710동 사이 중앙광장에서는 녹색장터와 책갈피 만들기 국화축제, 주민화합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축제 때마다 주민들은 중앙광장 가득 넘쳐났고 즐겁게 축제에 참여했다. 특히, 입주민 고향 만들기라는 취지로 열린 지난해 10월 열린 주민화합축제는 월드컵파크7단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좀 특별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따뜻하고 안전한 고향, 어르신들에게는 옛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처럼 정이 넘치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되리라는 취지의 축제였다고 한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 있게 민속놀이, 훈장님 가훈쓰기 행사, 옛 이야기 들려주기 등 고향 냄새 물씬 나는 행사들이 진행됐다.
"글향기 북카페가 만들어지면서 아파트엔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던 주민들이 북카페와 중앙광장에 모여 무언가를 나누고 소통하며 즐거워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아는 얼굴도 많아지고 주민들끼리 더 긴밀해졌어요. 올해엔 주민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강좌 사업과 자녀교육 사업을 더 많이 시도해 보려고 해요. 재능 기부를 해 온 주민들도 많아요. 살기 좋고, 살고 싶은 아파트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거 아닐까요." 월드컵파크7단지 공동체활성화단체장을 맡고 있는 김해미 씨의 의미심장한 말이 참으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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