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농부이야기

텃밭, 아파트式 잿빛 삶을 녹색으로

옥상사랑 2014. 6. 9. 21:38
헤럴드경제 | 입력 2014.06.09 15:39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부 송희정(가명)씨. 이곳으로 이사온 후 송씨의 가계부는 흑자폭이 커졌다. 식비, 그 중에서도 식단 준비에 드는 채소값이 확 줄어서다. 고추ㆍ깻잎ㆍ배추ㆍ상추 등 웬만한 찬거리는 '옥상텃밭'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송 씨는 "모든 생필품을 마트에서 해결하던 때보다 식비가 한 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즐거운 소일거리(텃밭 가꾸기)가 생겼고, 얼굴도 모르던 옆집 가족은 이웃사촌이 됐다.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 사는 그들은 이제 '도시농부'다.

텃밭이 아파트의 잿빛 삶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도심 내 밭 일구기로 대변되는 '도시농업'는 사실상 무한 확장하고 있다. 가족ㆍ주민단위에서 진화해 직장 옥상에도 텃밭이 생기며 공동체 활성화에 한몫 하고 있다. 지자체 또한 도시농업 확산에 적극적이다. 서울 반포본동 아파트의 옥상텃밭 [사진 =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콘퍼런스]

텃밭이 아파트의 잿빛 삶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도심 내 밭 일구기로 대변되는 '도시농업'는 사실상 무한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집 옆 방치된 땅이나 옥상ㆍ베란다 등에 자신이 먹을 채소를 기르는 데 머물지 않는다. 가족ㆍ주민단위에서 진화해 직장 옥상에도 텃밭이 생기며 공동체 활성화에 한몫 하고 있다. 지자체 또한 도시농업 확산에 적극적이다.

■ 밭으로 나온 '회색 공간' 사람들

서울 노원구 하계동 한신아파트는 옥상텃밭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1200가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의 1동 옥상은 수박과 각종 채소들이 자라는 밭이다. 2012년 1월 주민 30여가구가 옥상 텃밭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범적으로 1동 옥상 전체를 텃밭으로 조성한 것. 경작면적은 600㎡이다. 이어 2동에도 220㎡를 추가조성했다. 2013년엔 2동 옥상에 육모장을 설치해 채소 모종 자가 생산에도 성공했다.

이곳은 공동경작구간과 개별경작구간으로 나뉜다. 공동경작구간에서 생산된 수박, 참외 등은 주민과 나눈다. 생산물을 연중 2~3회 수확 할 때마다 전 주민과 나누는 행사를 개최한다. 개별경작 구간의 생산물(고추, 상추, 가지, 감자, 부추, 방울토마토)은 회원 각자가 소비한다.


서울 노원구 한신아파트 옥상텃밭

이뿐 아니다. 자연순환 농업을 위해 주민들은 빗물저장탱크를 만들었다. 비료는 무화학으로, 농약도 무독성으로 사용해 유기농을 실천하고 있다.

15층 아파트 옥상에 수박과 참외를 키워낸 주민들의 노력은 착실히 결실을 맺고 있다. 이 아파트 옥상텃밭의 성공사례는 '한신에코팜'이란 이름으로 서울시 주최 녹화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도시농업은 주거공간만 바꿔놓은 게 아니다. 직장으로도 파고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본사 옥상에 '하늘농장'을 만들었다. 일종의 사내텃밭을 만든 셈이다. 텃밭은 32개의 작은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팀별로 푯말을 설치해 도심에서 쉽게 재배 가능한 상추, 깻잎, 고추 등 8개 작물을 재배하는 중이다. 재배는 각 팀별로 이뤄진다. 수확한 작물은 각 팀 회식에 사용하기도 하고 팀원끼리 나눠 갖기도 한다.


현대백화점 본사직원들이 옥상에 직접 가꾼 텃밭

직원들은 업무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서 텃밭에 물을 주고, 잡초 제거하며 업무시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본사 총 41개팀의 신청을 받아 32개 팀을 선발했는데, 신청 당일 41개팀 전원이 신청하는 등 사내의 관심도 뜨거웠다"며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생겼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지자체, '1가구 1텃밭'…2020년 서울 도시농부 100만가구 목표

지자체도 도시농업 확산에 발벗고 나섰다. 서울 강동구가 대표적이다. 강동구는 '도시농업 2020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20년까지 강동구의 모든 가구 (19만가구 가량)에 텃밭을 보급하고, 전 주민이 친환경 생활을 누릴 수 있는 '1가구 1텃밭'을 조성한다는 청사진이다.

강동구의 도시텃밭은 2010년 둔촌동에서 처음 조성됐다. 2011년엔 암사ㆍ고덕ㆍ강일ㆍ둔촌 네 권역으로 커졌다. 가정에서 손쉽게 키우는 상자텃밭 총 5000여 구좌를 어린이집, 학교, 경로당 등에 공급하기도 했다.

강동구는 단순히 도시텃밭 공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농업을 친환경 로컬푸드 시스템과 연결하는 한편, 도시자원순환센터 등도 설립한다. 도시농업을 안전한 먹거리 공급과 지역 환경 보전 등과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서울 강동구 길동주민센터의 옥상텃밭 수확물. 강동구는 서울에서 도시농업이 가장 활성화 한 자치구 중 하나다.

서울시도 개별 자치구의 도시농업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시는 2012년 6월 '도시농업 원년'을 선언했다. 지난해 9월엔 도시농업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도시농업 수도'로서 서울의 재도약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는 2014년을 도시농업 활성화 및 사후관리의 해로 삼고 있다. 재배기술상의 문제 등으로 중도포기하는 참여자를 줄이기 위해 도시텃밭관리사 20명도 처음 뽑았다. 이들은 순회교육을 통해 '도시농업 전도사'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민생경제과 도시농업팀에 따르면 작년 기준 도시농부는 44만가구다. 2020년엔 이를 100만가구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유한수 서울시 도시농업팀장은 "(도시농업은) 단순히 도심 속 텃밭을 가꾸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치유프로그램 역할도 톡톡히 한다는 게 각종 효과로 증명됐다"며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농업 지원을 최대한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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