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공학관 옥상에다 한무영 교수 등이 조성한 텃밭에서 지난 11일 한 교수와 학생들이 꽃과 채소 등을 보살피고 있다. 840㎡인 이 텃밭은 하루 40㎜까지는 빗물을 한 방울도 흘려보내지 않고 머금을 수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달라진 ‘빗물 정책’
여름철 서울에 마치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폭우가 쏟아진다. 도심 한복판이 잠기곤 한다. 서울시는 올해도 집중호우 대응에 4600억여원을 쓴다. 그런데 ‘빗물과 맞서지 말고 친해지라’는 이들이 있다. 물 순환 리듬을 되살리면 돈도 덜 들고 시민들도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서울에 지난 10일 새벽부터 장맛비가 쏟아졌다. 이날 오전 10시께 서울시청 새청사 지하 3층 서울안전통합상황실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물 관리 담당 공무원들은 속속 들어오는 레이더 영상, 강우량, 하수관거 수위 현황 등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 대형 화면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제발 비가 예쁘게 내려야 할 텐데….”
예쁘지 않은 비는 ‘순간 강우량’이 많은 비다. 많은 비라도 조금씩 천천히 내리는 건 문제없다.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100년 빈도의 ‘시간당 100㎜ 안팎의 집중호우’가 두려운 것이다. 실제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로 2010년·2011년 여름 광화문 네거리, 강남역 네거리가 물에 잠겼고, 2011년 7월엔 서초구 우면산 비탈면이 무너졌다.
서울시가 올해만 4660억원을 들이는 수해안전대책도 집중호우 대응에 맞춰져 있다. 광화문, 강남역, 사당역, 관악산 도림천, 강서구 신월동 등 수해 취약지역에 하수관거 확충·신설(2743억원), 빗물펌프장 신증설(666억원) 등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빗물과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빗물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 물순환정책 예산 작년의 2배
빗물저장·관리시설 설치 등 추진 대학 빗물활용 ‘옥상정원’도 눈길
청소·조경용수 사용 등 효과 톡톡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한무영 소장
“서울시 빗물정책 속도 너무 느려…
빗물시설 확대 설치해 자원 활용을”
■ ‘1석3조’ 옥상정원의 재발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공학관 35동엔 독특한 실험실이 있다. 한무영(57)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지난해 건물 옥상(2016㎡)에 옥상정원(840㎡)을 조성한 것이다. 채소를 얻자는 것이 아니라, 빗물 활용을 연구하려는 실험 공간이다. ‘마이 가든’이라 이름 붙인 옥상정원은 빗물을 모을 수 있게 오목하게 만들었다. 강우량과 빗물 유출량 등을 꼼꼼히 잰다. “하루 40㎜까지는 빗물이 한 방울도 새나가지 않습니다.” 옥상정원의 저류효과를 한 교수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서울대 교정의 건물 220개동에 모두 옥상정원을 갖추면 총저류량이 4만t가량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물론 시간당 몇십㎜씩 쏟아지는 호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몇 분만이라도 빗물을 잡아둠으로써 도시홍수를 완화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 정원을 설치하면 도시 열을 식히는 효과도 있다. 빗물로 텃밭에 물 주고 빗물을 모아 청소하는 데 쓰면, 그만큼 수돗물을 생산·이동시키는 데 쓰는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 한 교수는 “도시홍수를 완화하고, 한꺼번에 정전되는 블랙아웃도 예방하고, 한여름 도심이 가열되는 열섬 현상도 줄인다. 1석3조다”라고 강조한다. 이 건물 1층 밖에는 옥상정원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모으는 ‘빗물 저금통’을 뒀다. 청소용수나 조경용수로 쓴다. 건물 인근 가로수 아래엔 녹지를 마련해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게 한다. 한 교수가 옥상정원을 만드는 데는 2억원이 들었다. 서울시와 기업의 지원도 받고, 사재도 보탰다. 6개 구역을 꽃밭, 나무를 심은 정원, 채소를 기르는 텃밭으로 만들었다. 텃밭은 서울대 학생·교수, 관악구 주민들과 함께 가꾼다. 그러면서 소통하고 교류하며 얻는 치유(힐링) 효과까지 더하면 1석4조인 셈이다. 텃밭에서 수확하는 상추·쑥갓·방울토마토 등은 ‘덤’이다. 1주일에 한번씩 들른다는 서진숙(66·관악구 난곡동)씨는 “싱싱한 채소를 식탁에 올릴 때마다 삶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빗물 순환에 주목을” 한 교수는 2004년부터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을 겸해왔다. ‘빗물 박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서울시의 물 관리 정책을 두고 “홍수 예방이란 단일 목적에 치우쳐 있다”고 진단한다. 서울시가 50년 빈도의 집중호우에 대응해 대형 저류시설을 만든다 해도 100년 빈도의 더 많은 비가 내리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 순환체계의 복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장대희(40) 수석연구원은 “도시홍수는 물 순환체계의 붕괴에서 비롯된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엔 빗물이 개천과 강으로 빠져나가고 또 땅에도 스며들어 지하수로 빠졌다. 그런데 고밀도 개발로 도시의 지표면이 건물과 도로·보도로 뒤덮이자, 빗물이 빠져나갈 길은 하수도 한 곳밖에 없게 됐다. 비가 와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 서울의 불투수층은 1962년 7.8%에서 2010년 47.7%로 늘었다. 빗물이 한꺼번에 몰리는 도시홍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수관거 용량 증대에 주력하는 서울시 수방 대책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동반하게 되는 상당히 소모적인 방안”이라는 게 장 연구원의 지적이다. 한 교수가 ‘옥상녹화’를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옥상정원을 두루 조성하고 건물 지하에 작은 저류시설을 많이 만들면 비용은 적게 들면서도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빗물이 예전처럼 순환하도록 하려면 자연녹지나 학교 운동장처럼 넓고 트인 공간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서울시엔 그럴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흙 위에 들어선 건물들의 옥상에다 다시 정원을 조성하는 방안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장 연구원도 “옥상녹화는 20㎝의 토양층만으로도 연 강수량의 40~70%까지 빗물 유출 저감 기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노원구 공릉동 원룸 건물에 설치한 빗물 저장통을 살펴보고 있다. 정태우 기자 |